조진주·김규연 듀오 콘서트, 현과 건반으로 무대를 전쟁 한복판에 놓다

입력 2023-08-23 18:48   수정 2023-08-24 00:39


제1차 세계대전부터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인간의 영혼까지 앗아간 파멸의 시대에 음표를 써 내려가야 했던 음악가들의 고통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자리였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특별음악회-조진주&김규연 듀오 콘서트’ 얘기다.

오후 7시30분. 만 17세 때 캐나다 몬트리올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콩쿠르의 여왕’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와 서울대 음대 교수인 피아니스트 김규연이 당찬 발걸음으로 등장했다.

첫 번째 곡은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가 제1차 세계대전 중 완성한 최후의 작품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조진주는 시작부터 강렬한 음색과 시원시원한 보잉(활 긋기)으로 서늘함 속에 녹아든 열정적인 색채를 펼쳐냈다. 두 연주자 간 호흡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서로의 색채, 리듬, 표현 변화에 긴밀히 반응하면서도 작품의 견고한 구조와 짜임새를 살리는 순간은 놓치지 않았다.

다음 곡은 풀랑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FP 119’. 스페인 내전의 희생자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에게 헌정된 것으로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조진주는 마치 활로 바이올린을 때린다고 생각될 정도의 격정적인 보잉과 견고한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연주하는 것)으로 작품에 담긴 풀랑크의 격앙된 감정을 펼쳐냈다. 비가(悲歌)인 2악장에선 잔잔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세련된 터치로 프랑스 음악 특유의 몽환적 감성을 살려냈다.

마지막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기억을 담은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이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암울한 곡으로도 유명하다. 조진주는 활을 악기에 강하게 밀착해 만든 단단한 음색으로 주제 선율이 품은 맹렬한 악상을 펼쳐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을 빼고 가벼운 터치로 애절한 선율을 속삭이며 작품의 다채로운 감정선을 표현했다. 2악장에선 무언가를 파괴하려는 것처럼 강하게 악기를 내려치는 소리가 강조됐는데, 두 악기의 냉소적인 선율이 서로에게 거칠게 달려드는 듯 공격적으로 표현되면서 속이 메슥거릴 정도의 불편한 감정을 유발했다. 4악장. 음산한 색채와 저음에서 고음으로 솟구치며 펼쳐내는 역동적인 악상이 대비를 이루면서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하다가 점차 음량을 줄여 탄식하듯 사라지는 연주는 깊은 여운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날 조진주와 김규연이 들려준 것은 ‘파괴의 잔상’이었다.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수십 년 전 그날의 참혹함을 생생히 마음에 새기도록 하는 그런 연주 말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무대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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